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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계약서엔 없는데 미팅에서 말로 정한 것

말로 한 약속도 계약입니다. 문제는 그 약속이 계약서와 부딪힐 때입니다. 13개국이 계약서와 다른 구두 합의를 어떻게 다루는지 비교했습니다.

미팅은 늘 비슷하게 끝납니다.

“이 조건이면 되죠?” “네, 그렇게 하시죠.”

계약서는 이미 있습니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조건은 그 자리에서 말로 정해집니다. 일정이 당겨지고, 범위가 조금 늘고, “이 정도는 같이 해주시는 거죠?”가 오갑니다.

그리고 일이 끝날 때쯤 이런 말이 나옵니다.

“이것도 원래 포함 아니었어요?”

말로 한 약속도 계약입니다. 문제는 그 약속이 계약서와 부딪힐 때입니다.

13개국이 계약서와 다른 말을 다루는 방식

나라 계약서와 말이 다를 때
한국 계약서 기재대로 인정. 분명하고 수긍할 만한 반증이 있어야 뒤집힘
미국 완결된 계약서면 이전·동시의 구두 합의는 배제. 체결 뒤 변경은 따로 판단
영국 “변경은 서면으로만” 조항이 있으면 말로 바꾼 것은 효력 없음
캐나다 계약서 우선. 서면 변경 조항의 효력은 법원마다 다름
호주 서면 변경 조항이 있어도 증거가 충분하면 말로 바꾼 것 인정
뉴질랜드 서면 변경 조항은 추정일 뿐, 강한 증거로 뒤집힘
인도 계약서와 다른 구두 증거 배제. 체결 뒤 변경은 입증 가능(법정 서면·등기 계약 제외)
일본 계약에 서면 불요(2020년 명문화). 입증은 당사자 몫
스페인 형식 자유. 부동산 물권 등 일부는 공정증서
멕시코 형식 자유. 법이 형식을 정한 계약은 그 형식이 있어야 유효
칠레 2UTM 초과 계약은 체결 전·당시·후에 말한 것을 증인으로 입증 불가
아르헨티나 서면이 관행인 계약은 증인만으로 입증 불가
이탈리아 이전·동시 합의는 증인 불가, 체결 뒤 합의는 판사 재량

조사한 나라만 넣었습니다. 아일랜드는 영국 판례를 따르는지 확인하지 못했고, 독일·프랑스·브라질도 뺐습니다.

출발점은 어느 나라나 같습니다. 말로 한 약속도 계약이다. 다만 계약서가 있으면 계약서가 먼저다. 갈리는 건 그다음입니다.

말로 한 약속도 계약입니다

한국 민법은 계약의 형식을 정해두지 않았습니다. 청약과 승낙이 맞으면 말로도 계약이 성립합니다.

다른 나라도 대부분 같습니다. 일본은 2020년 민법 개정 때 이걸 조문으로 적었습니다. 법령에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계약 성립에 서면 작성 등의 방식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민법 제522조 제2항). 스페인 민법 제1278조, 멕시코 연방민법 제1832조, 아르헨티나 민상법 제284조도 형식 자유를 원칙으로 둡니다.

예외는 있습니다. 한국은 보증을 반드시 서면으로 해야 합니다. 보증인의 기명날인이나 서명이 있는 서면으로 표시되어야 효력이 생기고, 전자적 형태로 표시된 보증 의사는 효력이 없습니다(민법 제428조의2). 일본도 보증 계약은 서면으로 하지 않으면 효력이 없고(민법 제446조 제2항), 영국은 1677년 사기방지법 제4조가 지금도 보증을 서면으로 입증하도록 요구합니다.

부동산 계약은 영국에서는 합의한 조건 전부를 하나의 서면에 담아 양쪽이 서명해야 하고(1989년 재산법 제2조), 이탈리아에서는 서면이 없으면 무효이며(민법 제1350조), 스페인은 공정증서로 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민법 제1280조).

계약서가 있으면 계약서가 이깁니다

문제는 대부분 여기서 생깁니다. 계약서가 있는데, 미팅에서 다른 걸 말로 합의한 경우입니다.

한국 대법원은 이렇게 봅니다. “처분문서는 진정성립이 인정되면 그 기재 내용을 부정할 만한 분명하고도 수긍할 수 있는 반증이 없는 이상 문서의 기재 내용에 따른 의사표시의 존재와 내용을 인정해야 한다”(대법원 2021. 9. 30. 선고 2019다245457 판결).

계약서에 적힌 것은 그대로 인정되고, 거기에 없는 걸 말로 합의했다고 주장하는 쪽이 그걸 뒤집을 만한 증거를 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른 나라는 이걸 더 딱딱한 규칙으로 둡니다.

  • 미국은 계약서가 합의 전부를 담은 것으로 인정되면, 그 이전이나 동시에 한 구두 합의로 계약서 내용을 바꾸거나 뒤집을 수 없게 합니다. 구두증거배제 원칙(parol evidence rule)입니다.
  • 인도는 서면 계약의 내용과 모순되거나, 바꾸거나, 더하거나, 빼는 구두 합의를 증거로 받지 않습니다(증거법 BSA 제95조, 옛 증거법 제92조).
  • 이탈리아는 계약서 이전이나 동시에 했다는 추가·반대 합의를 증인으로 입증하지 못하게 합니다(민법 제2722조).
  • 칠레가 가장 엄격합니다. 2UTM(세무 단위)을 넘는 계약은 서면이어야 하고, 체결 전·체결 당시·체결 후에 말했다고 주장하는 내용을 증인으로 입증할 수 없습니다(민법 제1709조).

체결 뒤에 바꾼 건 따로 봅니다

“이것도 포함”이 문제가 되는 건 대개 계약서를 쓴 뒤입니다. 일을 하면서 범위가 늘어나니까요.

여기서 나라마다 갈립니다.

미국의 구두증거배제 원칙은 계약 이후의 변경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인도도 계약을 해지하거나 바꾸는 별도의 후속 구두 합의는 입증할 수 있다고 정해두었습니다. 다만 법이 서면을 요구하는 계약이나 등기된 계약은 예외입니다. 이탈리아는 체결 뒤의 합의를 판사가 당사자의 성격과 계약의 성질, 그 밖의 사정을 보고 그럴듯하다고 판단할 때에만 증인으로 입증하게 합니다(민법 제2723조).

반대로 칠레는 앞에서 본 것처럼 체결 후에 말한 것도 증인으로 입증하지 못하게 막아둡니다.

“변경은 서면으로만” 조항이 있으면

계약서에 이런 문장이 들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계약의 변경은 서면으로 하고 양 당사자가 서명해야 효력이 있다.”

이 조항이 있을 때 말로 바꾼 조건이 살아남는지는 나라마다 정반대입니다.

나라 서면 변경 조항이 있을 때 말로 바꾼 것
영국 효력 없음
호주 증거가 충분하면 인정
뉴질랜드 조항은 추정일 뿐, 강한 증거로 뒤집힘
캐나다 법원마다 다름, 대법원 판단 없음
미국 일반 계약은 엄격히 적용 안 됨, 물품 매매는 조항 유효
이탈리아 형식을 서면으로 정해두면 효력 요건으로 추정

영국 대법원은 2018년 Rock Advertising v MWB 사건에서, 변경은 서면으로 하고 서명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는 계약을 말로 바꾼 것은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당사자들이 정말 바꿀 생각이었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호주는 반대입니다. 1906년 Liebe v Molloy 판결 이래로, 서면 요건을 정해두었더라도 당사자들이 말이나 행동으로 다른 권리·의무를 합의했다는 설득력 있는 증거가 있으면 그걸 인정해왔습니다. 영국 판결 이후에도 이 입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뉴질랜드는 이 조항을 실체적 효력이 아니라 증거상의 추정으로 봅니다.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증거가 있으면 뒤집힙니다. 캐나다는 이 조항을 유효하다고 본 하급심이 있는 반면, 온타리오 항소법원은 이 조항이 있는데도 당사자의 행동으로 계약이 바뀌었다고 본 적이 있고, 캐나다 대법원의 판단은 아직 없습니다.

미국은 일반 계약에서는 이 조항을 대체로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지만, 물품 매매에는 통일상법전 제2-209조가 이 조항을 유효하다고 정해두었습니다. 이탈리아는 당사자가 앞으로 맺을 계약의 형식을 서면으로 정해두면 그 형식을 효력 요건으로 원했다고 추정합니다(민법 제1352조).

한국은 이 조항의 효력을 정면으로 다룬 대법원 판례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하도급 거래라면 쓸 수 있는 조항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하도급법이 적용되는 거래라면, 말로만 받은 추가 위탁을 서면으로 굳히는 방법이 법에 있습니다.

원사업자가 위탁 내용을 적은 서면을 주지 않았다면, 수급사업자가 받은 작업 내용과 대금 등을 서면으로 원사업자에게 통지해 확인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원사업자는 통지를 받은 날부터 15일 안에 인정하는지 부인하는지 서면으로 답해야 하고, 그 기간에 답하지 않으면 통지한 내용대로 위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하도급법 제3조). 천재지변 등으로 회신할 수 없었던 경우는 예외입니다.

“이것도 원래 포함 아니었어요?”가 나오기 전에, 미팅에서 정한 걸 서면으로 보내두는 게 이 조항이 가장 잘 쓰이는 방식입니다.

하도급법이 적용되지 않는 프리랜서 거래에서 대금을 받는 방법은 계약서를 안 썼어도 대금은 받을 수 있습니다에 정리했습니다.

결국 싸움은 미팅에서 한 말을 보여줄 수 있느냐입니다

13개국 어디서나 말로 한 약속은 유효하지만, 계약서와 다르다면 그걸 주장하는 쪽이 증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증명은 거의 전부 미팅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로 모입니다.

현실적인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미팅이 끝나면 바로 문자나 메일로 정리해 보냅니다. “오늘 말씀하신 대로 ○○까지 포함해서 진행하겠습니다.” 상대가 답을 안 해도, 그날 그렇게 이해했다는 기록이 남습니다.

미팅을 녹음합니다. 한국에서는 본인이 참여한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처벌 대상이 아닙니다(한국에서 대화 녹음은 합법인가). 다만 을의 입장에서 “녹음해도 될까요?”를 꺼내기 어렵다는 게 현실입니다.

TalkSafe는 미리 정해둔 말이 들리면 녹음을 시작하는 안드로이드 녹음 앱입니다. 화면이 잠긴 상태에서도 동작하고, 녹음이 시작되기 전 30초까지 함께 저장합니다. 휴대폰을 꺼내 조작하느라 대화 흐름을 끊지 않아도 됩니다.

녹음을 증거로 쓸 때 원본과 앞부분이 왜 중요한지는 녹음은 했는데 증거로 못 쓰는 경우에 있습니다.

정리

  • 말로 한 약속도 계약입니다. 다만 보증처럼 서면이 필수인 계약이 있습니다.
  • 계약서가 있으면 계약서가 먼저입니다. 다르게 합의했다고 주장하는 쪽이 증명해야 합니다.
  • 체결 뒤에 말로 바꾼 조건은 나라마다 다르게 봅니다. “변경은 서면으로만” 조항은 영국에서는 강하고 호주에서는 약합니다.
  • 하도급 거래라면 서면 통지 후 15일이 지나면 통지대로 추정되는 조항이 있습니다.
  • 미팅에서 정한 건 그날 문자로 남기거나 녹음합니다.

돈을 빌려주면서 말로만 약속한 경우의 13개국 소멸시효와 채무 인정 방식은 차용증 없이 빌려준 돈에 정리했습니다.

입사할 때 면접에서 들은 조건이 계약서와 다른 경우는 면접 때 들은 조건과 계약서가 다릅니다에 13개국의 근로조건 명시 제도로 정리했습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이며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사안은 변호사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계약서 없이 말로 한 약속도 효력이 있나요?

한국 민법은 계약의 형식을 정해두지 않았기 때문에 말로 한 약속도 계약으로 성립합니다. 다만 보증은 보증인의 기명날인이나 서명이 있는 서면으로 표시되어야 효력이 생기고, 전자적 형태로 표시된 보증 의사는 효력이 없습니다(민법 제428조의2).

계약서와 다르게 미팅에서 말로 합의했다면 어느 쪽이 우선인가요?

원칙적으로 계약서입니다. 대법원은 처분문서의 진정성립이 인정되면 그 기재 내용을 부정할 만한 분명하고도 수긍할 수 있는 반증이 없는 이상 기재 내용대로 의사표시를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대법원 2021. 9. 30. 선고 2019다245457 판결). 계약서와 다른 합의를 주장하는 쪽이 그 반증을 내야 합니다.

계약서에 없는 작업을 상대가 원래 포함이었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요?

계약서에 없는 내용을 말로 합의했다고 주장하는 쪽이 그 합의를 증명해야 합니다. 미팅에서 정한 범위를 그날 문자나 메일로 정리해 보내두거나, 본인이 참여한 미팅을 녹음해두면 나중에 무엇이 합의됐는지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하도급 거래에서 추가 작업을 말로만 요청받았다면요?

하도급법이 적용되는 거래라면, 원사업자가 서면을 주지 않았을 때 수급사업자가 작업 내용과 대금 등을 서면으로 통지해 확인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원사업자가 15일 안에 인정이나 부인을 서면으로 회신하지 않으면 통지한 내용대로 위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하도급법 제3조).

계약 변경은 서면으로만 한다는 조항이 있으면 말로 바꾼 건 무효인가요?

나라마다 다릅니다. 영국 대법원은 2018년 Rock Advertising 사건에서 그런 조항이 있으면 말로 바꾼 것은 효력이 없다고 봤고, 호주는 1906년 Liebe v Molloy 판결 이래 설득력 있는 증거가 있으면 말로 바꾼 것을 인정해왔습니다. 한국에서 이 조항의 효력을 정면으로 다룬 대법원 판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미팅 내용을 상대에게 알리지 않고 녹음해도 되나요?

한국에서 본인이 참여한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통신비밀보호법상 처벌 대상이 아닙니다. 금지되는 것은 본인이 참여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는 것입니다. 녹음 파일을 퍼뜨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가 될 수 있습니다.

TalkSafe로 미팅을 어떻게 남기나요?

TalkSafe는 미리 정해둔 말이 들리면 녹음을 시작하는 안드로이드 녹음 앱입니다. 화면이 잠긴 상태에서도 동작하고 녹음 시작 전 30초까지 함께 저장되므로, 녹음하겠다고 말을 꺼내거나 휴대폰을 조작하느라 대화 흐름을 끊지 않아도 됩니다.